도난당한 역사 (2-1부) 과거와의 단절. 그 자리를 채운 빅뱅이론, 진화론, 허무주의, 판타지

2022. 4. 6. 10:05정보[지구와 우주 이야기]/숨겨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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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역사 (2-1부) 과거와의 단절. 그 자리를 채운 빅뱅이론, 진화론, 허무주의, 판타지

Part 2를 4개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Part 2-1  과거와의 단절. 그 자리를 채운 빅뱅이론, 진화론, 허무주의, 판타지Part 2-2  산업화Part 2-3  제국주의Part 2-4  산업화의 결과 내용 요약조상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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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를 4개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Part 2-1  과거와의 단절. 그 자리를 채운 빅뱅이론, 진화론, 허무주의, 판타지
Part 2-2  산업화
Part 2-3  제국주의
Part 2-4  산업화의 결과


내용 요약
조상들의 문화와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신화 속에도 남아 있다. 비밀 사회(카발)는 이것을 삭제하고 조작함으로써 우리를 진실된 역사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다.


그들은 전쟁과 산업화를 꾸며내어 우리를 허무주의, 물질주의에 빠트리고 있다. 또한, 빅뱅 이론과 진화론을 꾸며내어 우주는 물질계일 뿐이고 생명은 죽으면 끝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다윈, 아인슈타인, 계몽주의가 그러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잃고 물질주의에 빠져든다. 현실을 도피하여 판타지를 찾는다.  인간은 춥고 끝 없는 우주를 떠도는 무의미하고 무작위적인 존재라고 세뇌되었다.
 
럼블 링크
https://rumble.com/vzbtfp--part-2-1-.html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다시 기억해 내고, 속임수의 베일을 벗겨야 할 때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과거에 대해 알고 있을까?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은 집단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때문인가?
500년 전 또는 그 이후에, 발전된 기술을 가진 통합 문명이 지구에 있었는가?
세계 박람회는 잊혀진(삭제된) 기술을 다시 도입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19세기 들어 갑자기 인간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빈번하게 열렸던 임시 박람회는, 누군가가 이를 빌미로 이전 시대 건축물의 잔재를 비밀리에 파괴하기 위함이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 - 신화와 창조력 
신화가 없는 사람은 영원히 굶주린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틈바구니에서 서서 뿌리를 찾아 파고든다. 그는 아주 먼 고대 시대에서도 뿌리를 찾아 다녀야 했다. 결핍을 느끼는 현대 문화는 역사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엄청난 욕구를 가진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통합되며, 끊임없이 인식을 갈망한다.  이런 현상은 신화가 상실되었고, 신화의 고향도 신화의 자궁도 모두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신화가 없으면 모든 문화는 건전한 창조력을 잃는다. (출처 - 음악의 영혼으로부터 태어난 비극을 위하여)



과거에 대한 기억이 중요한데..
오늘날 인간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미의 상실이다. 의미는 과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 삶의 의미도 희미해진다.


오늘날의 사람은 그가 어디에서 왔고, 그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는 그를 마음대로 좌우하는 권력의 손에 쥐어 진 볼모가 되었다. 그는 그의 과거로부터 뿌리 뽑힘으로써 그의 기반이 사라졌다.


현실을 토대로 한 기반 없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해 나갈 수가 없다. 뿌리로 돌아가는 길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후생 유전학의 의미
후생 유전학은 우리의 DNA에 코딩되지는 않았으나 대를 이어가며 발현되는 유전적 변화를 연구한다. 후생 유전학은 우리의 삶의 경험(예: 고난, 외상 경험 등)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물림되는 집단 기억 - 인도의 에테르
신화 및 종교적 전통은 더 나아가 집단적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Vedas(힌두교의 경전)에는 일종의 보편적인 기억이 언급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 "Akasha"는 하늘, 공간 또는 에테르를 의미하며,  대물림 되어 온 동양의 전통적 지혜에 따르면, 에테르는 창조의 다섯 가지 요소 중 가장 미묘한 것이다.


인도 신화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과 행해 진 모든 행동이 이 정보 필드(장 field)에 저장된다. 이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전설적인 야자수 잎 도서관에도 표현되어 있다. (야자수 잎에 기록을 적어서 보관)


집단 기억은 성경에도 있다
세계적인 집단 기억의 개념은 서양 문화에도 존재한다. 성경에 비슷한 얘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에서는 "기억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에너지 보존 -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전해진다
모든 활동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에너지는 소멸될 수 없다. (에너지 보존). 에너지가 보존된다면 우리는 밀폐된 시스템에 있는 셈이고, 그 밀폐된 공간 안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것, 당신의 모든 발언, 당신이 취하는 모든 행동, 당신이 쓰는 모든 동전 한 잎까지 기록된다.



기억은 에너지 장에 저장된다
따라서 우리는 조상들의 모든 경험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에너지 장(field)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약 100년 전까지도 에테르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속성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표준 개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와 크게 단절된다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단지 묻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장막을 걷어내고 기억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린다면 과거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개인이 홀로 기억상실증을 돌파할 수는 없다.



신화의 중요성
의미가 강렬한 이미지들은 불가사의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세계의 종교들은 극도로 파괴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그러한 이미지들을 이용한다.  신화와 동화에도 그러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신화의 의미가 더 클수록 우리의 과거에서 그 신화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었다.



신화가 내쏟는 빛으로부터 우리는 이미 신화가 우리 인류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신화를 받아 들인다면, 신화로부터 감동을 받으시라.

예를 들어, 대홍수는 우리의 집단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 거인, 용 또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도 집단 기억에 남아 있다.



계몽주의 - 자기 소외를 부추기다
우리 인간이 이러한 신화적 이미지를 포기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 즉 우리 자신의 존재로부터 스스로를 더욱 소외시킨다. 이러한 자기 소외의 과정은 이른바 계몽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반복되었던 대격변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기억 상실은 인간의 방어 반응 중 하나이다. 우리는 전투 충격이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저서들에 따르면,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있었던 재앙은 불쑥 일어났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사건이며, 우리를 압도하던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재앙에 대한 기억은 역사 기록에서 서서히 망각되어 사라졌다."



플라톤 - 대격변과 재건
플라톤은 여러 작품에서 대격변을 설명했다. 그는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된 세계에 대해 썼다.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그는 그리스인들이 대홍수 외의 다른 재앙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이스의 사제들이 솔론에게 말했듯이)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재앙적인 사건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 저자가 플라톤으로 잘 못 알려져 있을 수 있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 플라톤은 평화로운 우주를 믿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리스토텔레스 - 대격변은 없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앙을 믿지 않았다. 학계는 행성들이 그들이 움직임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혜성 충돌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는 행성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믿게 한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혜성 충돌 같은 재앙을 믿는 사람들은 재판을 받아야 하며 유죄가 선고되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퇴보된 과학
사람들이 과거를 혐오하기 때문에 과학은 비현실적인 것을 진실인 척 둔갑시켜왔고, 그 덕에 오히려 퇴보하였다.



다윈의 진화론 - 인류 정신 문명의 퇴보
다윈의 진화론 혁명도 퇴보였다. 혼란스러운 증거는 무시되었다. 마치 눈을 감고 일하는 것 같았다.  다윈은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현장 학습은 단 한번이었다. 그 때 기록한 그의 노트에는 대격변의 혼란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지구 전체가 흔들리면 그가 관찰한 생명체가 대량으로 멸종될 수 있다고 적었다. 다윈은 자신의 눈으로 본 증거가 가지는 의미를 무시했다.



다윈주의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재탄생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르네상스 시대는 아니더라도 계몽주의 시대에는 기반을 잃었다. 계몽주위 시대에도 사람들은 지구는 재앙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고 신봉했다.


아인슈타인과 다윈 - 허무주의를 퍼뜨리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인지 잊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특히 물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이 파괴되면서 우리의 뿌리는 뽑혀 나갔다. 전통적 지식을 허무주의적 세계관으로의 바꿔놓은 대표적인물이 아인슈타인과 다윈이다. 그 세계에서 인간은 춥고 끝 없는 우주를 떠도는 무의미하고 무작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반생명적 모델은 그 전에는 없었다,  최근 19세기에 완성되어 20세기에 완전히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는 학계에서도 저항이 컸다.


빅뱅 이론 - 예수회가 만들었다
이른바 빅뱅 이론은 종교적-밀교적 개념이 어떻게 과학에 침투했는지를 이해하는 좋은 예이다. 빅뱅 이론은 벨기에 예수회와 사제 조르주 르메트르가 만들었다.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빅뱅 이론은 모든 것이 원초적인 우주의 씨앗에서 진화했다는 개념이다.



그 당시 예수회는 세계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과학이라고 보이는 틀에 끼워 넣는 임무를 맡았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인 1951년에 교황청 과학원은 빅뱅 이론을 승인했다.   교황의 승인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교회의 반대가 아니라 일반 대중의 반대 때문이었다.  결국 빅뱅 이론은 바티칸이 만들어 낸 것이다. 비합리적인 빅뱅 이론은 여전히 ​​우리의 세계관의 일부이지만, 단 한 가지 증거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산업화를 통해 허무주의, 기계적 세계관이 퍼지다
Rosseau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의 허무주의적, 기계적 세계관은 산업화라는 온실에서만 번성할 수 있었다. 산업화는 인간을 물질적 관점으로 축소된 기계적 존재로 만들었다. 산업화는 전환점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산업화는 18세기나 19세기 초에 행해졌던 의도적인 재설정(리셋)의 결과이기도 하다. 



진흙 홍수, 그리고 재설정(리셋)
이 재설정은 진흙 홍수를 일으킨 사건 후에 이루어졌다. 전 세계적 진흙 홍수로 인하여 건물들이 부분적으로 흙에 잠겨 있다. 
이전에 1층이었던 곳이 지금은 지하실이 되어 있다. 진흙 홍수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 대전이나 전자기 플라즈마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



무의식의 전달
이에 대해 벨리코프스키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CG 융은 전 인류가 무의식을 텔레파시 또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공유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의식은 현재 상호 작용하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경험 뿐만 아니라 과거 모든 세대의 누적된 경험까지 포함한다. 이 무의식은 단순히 텔레파시가 아니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그 무엇이다.



트라우마
재앙은 국부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었기 때문에 생존에 성공한 인간도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트라우마. 상상해보시라. 갑자기, 시간은 더 이상 시간이 아니다.


화재로 인해 낮이 밤으로 바뀌지 않는다.  바다는 대서양 해안가에서만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대륙 위로 범람한다. 범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륙과 바다가 뒤바뀐다.  몇 시간 만에 평야에 산이 솟아오른다.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로 사방이 아우성이다.  모든 화산이 동시에 분출한다. 기존 화산뿐 아니라 수천 개의 새로운 화산이 폭발하고 타오른다. 강이 뒤집히고 지진은 도시를 들어 올린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역사를 기록한 지는 50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25세인 사람은 기록된 역사의 0.5퍼센트를 살았다.


글을 마치기 전에 독자 중 한 명이 보낸 편지를 읽겠다.


트라우마  
나는 신화, 서사시, 성스러운 작품에 나오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을 크게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우리 조상들은 깊은 두려움, 끔찍한 불안을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강력한 규율과 억압을 받아들일 만큼 끔찍했던 비상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도움을 받을까? 그 사람들이 기록한 신(God)은 끔찍했다
옛날 모든 사람들이 신경증, 걱정, 불행 등을 피하면서 생존하는 문제에 대해 기록했다는 점에서,  성경을 현대 생활에 직접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나에게 그런 접근 방식은 설득력이 없었고, 그 사람들이 기록한 신(God)은 끔찍했습니다. 구약에서 그는 진노의 신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지적했듯이 신(God)은 예수가 살아 있는 동안 또는 그 직후에 세상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 신(God)은 위험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신(God)이 나쁘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바위, 불, 홍수, 허리케인 등으로 처벌합니다. 그것은 고대인들이 적은 것이며, 나는 그 형벌을 약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의미한 바입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형태 공명과 집단 기억
"형태 공명(Morphic Resonance)은 시간을 초월한,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연결입니다." "그것은 발생한 어떤 일이 다른 곳에서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자 Rupert Sheldrake)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종마다 일종의 집단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자 Rupert Sheldrake에 따르면 집단 기억은 "자연에 내재된"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들은 전체 종의 과거 경험을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기억은 보이지 않지만 실제 에너지 장(field)에 존재한다.



집단 기억 - 이제 허구, 판타지에나 등장한다
우리의 집단적 기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근대가 시작된 이후로 그 기억들은 주로 허구적인 이야기에서나 작동한다.  예를 들어 톨킨의 "반지의 제왕" 같은 허구에서 말이다. 톨킨은 게르만 신화에 뿌리를 둔 자신의 이야기를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글로 썼다. 낡고 마법 같은 세계를 최후로 날려 버리는 바로 그 전쟁 중에. 


제1차 세계 대전은 문명이 영혼 없는 현대로 추락하는 시작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아마도 톨킨은 인간의 정신이 현실과 연결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기록해야 했을 것이다. 비록 이 연결이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유지되더라도 말이다. 


산업화 - 인류는 현실을 피해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판타지 이야기는 산업화 시대의 발명품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중이 허구 소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850년 경이었다. 삶 자체에 의미가 넘치고 더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까? 우리 사회가 적대적이고 차가울수록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려는 충동이 더 강해지고,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는 상상의 세계가 자리 잡게 되며, 이 억눌린 에너지가 상상의 세계에 생기를 부여한다.



비밀사회(카발)가 적이다
비밀 사회가 만들어낸 소위 과학이 종교를 파괴하였고 사람들은 과거와의 마지막 연결 중 하나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진실은 다시 밝혀지기를 원하며 결국 다시 드러날 것이다.  우리의 잠재력과 진정한 힘이 거의 무한하기 때문에 그들은 인류를 잠 재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