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역사 - 진흙에 묻힌 도시들
2022. 4. 26. 23:04ㆍ정보[지구와 우주 이야기]/숨겨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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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역사 - 진흙에 묻힌 도시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4Y-AyoAUBBYlist=PL_RslskBITukvkK3j2E3yGbE9cEjXQ_Kdindex=2t=480s 요약신세계질서는 지구에 닥친 대재앙을 틈 타서 (타타르 제국) 역사와 문명을 가로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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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4Y-AyoAUBBY&list=PL_RslskBITukvkK3j2E3yGbE9cEjXQ_Kd&index=2&t=480s
요약
신세계질서는 지구에 닥친 대재앙을 틈 타서 (타타르 제국) 역사와 문명을 가로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왔다.
진흙 홍수가 그러한 대재앙의 하나이다.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진흙 홍수의 흔적을 소개한다.
럼블 tcafe 링크 https://rumble.com/v12g6t1-64580725.html
진흙 홍수
1905년에 지어진 라이프치히 시청의 바닥은 왜 진흙으로 덮혀 있을까? 200년 전에 세계적인 진흙 홍수가 있었을까? 진흙 홍수가 있었다면 왜 알려지지 않은 걸까? 그 자체가 미스터리다.
지반의 액화 현상
단단한 땅이 몇 초 만에 액화되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예를 들면 지진 후가 그렇다.
"액화로 인해 도시의 많은 부분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액화로 인해 교외의 도로가 강과 같이 변했습니다" "여기 이 여성들을 보세요. 흙 속으로 가라 앉고 있습니다" "교회 바로 밑의 모래 지층이 심하게 흔들려 액화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전체가 몇 초 안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산발적인 진흙 홍수는 모든 것을 흙속에 묻어 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흙 홍수의 진행 과정
진흙 홍수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어떤 집들의 1 층은 흙 속에 묻힐 수도 있다. 전 세계 도시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본 니가타. 미얀마 라카잉. 카자흐스탄 알마티. 베트남 Kuanginh.
곳곳에서 보이는 가짜 지하실

1. 러시아 옴스크. 2017년, 나는 이런 사진을 수 없이 많이 발견했다. 건설 작업을 하다 발견된 모습인데, 이 건물의 지하실은 한때 1층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도시가 진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아마도 2층을 1층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원래 1층에 있던 창이 지금은 지하실의 창이 되었다. 이말이 맞다면 지하실에는 벽돌로 둘처쳐진 커다란 창문이 있어야 한다.
짜잔. 분명히 큰 창이 있다. 어떻게 땅 속에 창을 내었을까? 아무도 땅 밑에 큰 창문을 만들지는 않는다. 특히 100년 전에는 감자와 야채를 보관하기 위해 지하실이 어두워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하실에 창문이 있으면 먼지가 쉽게 날아들기도 한다.
땅속 지하실에 창문이 있다고?
2. 독일 라이프치히.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에는 거리 보다 낮은 쪽에 큰 창문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레이만 스트라세의 이곳이 그렇다. 이처럼 출입구가 높고 그 밑으로 또 다른 층이 있는 건물들이 많다.
3. 폴란드 Danzig
이것은 2018년 여름, 단스크의 멋진 사진이다. 겉보기에는 지히실이지만 전에 1층이었는데 땅 속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Danzig, 2018년 여름.
4. 덴마크
여기 덴마크에도 흥미로운 예가 있다. 건축가가 난쟁이를 위해 지은 건물인가? 지상에 건물을 짓지 않고 이처럼 생활 공간의 절반을 거리 밑에 둔 이유가 무엇일까?
원래부터 반지하로 지은 것이 아니다
이런 건설 방법이 잘 못되었다는 이유 3가지를 제시해 보겠다.
첫째, 최소한의 공기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에 묻혀 있는 곳에 생활 공간을 만들 수 없다.
둘째, 생활공간이 반 지하에 있기 때문에 습기가 찬다.
셋째, 입구의 계단과 문 주변의 공간을 파내야 하고 계단도 만들어야 하므로 더 번거롭다.
건축가가 그들의 기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해답을 찾아보자.
건물 높이 제한 때문이라고?
한 건축가는 그 이유가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건축법 때문이라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따르면 건물주는 허용된 건물 높이 내에서 최대한 많이 임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재정적 이유 때문이다.
하인들 거주용으로 습기 차는 반지하층을 지었다는 것이다. 중앙 난방이 없는 시절,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반지하에 살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주장이지만 진짜 이유를 통째로 무시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일 것이다. 과거에 하인들은 예를 들어 다락방에서 같이 항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거주하였다.
게다가 그 저택을 지은 틀림없이 부유했을 건물주들에게 정말로 약간의 추가 수입이 필요했을까?
또한, 반지하의 더러운 창문이 고상하게 장식된 건물 정면의 외관을 망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중요 시 했을터인데 왜 창문을 가로막는 곳에 계단을 만들었을까?
나는 내 고향 라이프치히에서만도 이처럼 특이한 건축물을 수십 군데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계단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추가된 것이다.
라이프치히의 새로운 시청은 110m 높이의 타워를 가진 초대형 건물이다. 이런 새로운 건물도 마찬가지 진흙 홍수에 묻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청 건물의 창문도 최대 1.8m 반지하에 있다. 반지하에 20개의 방을 추가하는 것이 그렇게 급했을까? 시의회 자체의 조례 때문에 반지하로 만든 것일까? 빛이 거의 들지도 않는데 왜 큰 창을 만들었을까?
잠깐. 무언가 빠진건가? 나는 1556년에 지어진 라이프치히의 구 시청 건물을 조사하던 중 원하는 것을 찾았다. 당시 그려진 그림을 올바르게 해석했다면 1600년까지는 구 시청 건물은 한 층이 더 있었다. 심지어 1830년까지도 그랬다. 1593년 당시의 화가가 혼돈해서 잘 못 그린 것일까? 그러나 그림이 맞다면 시청은 1830년에도 지금보다 더 높았다. 그리고 1900년에 한 층이 없어졌다. 1900년 당시 라이프치히의 시청.
잠정적인 결론,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 사진들은 계속해서 예전 시청이 지금보다 더 키가 컸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마켓의 지면은 그 전체가 옛날보다 높아져 있다. 지진으로 땅이 녹아서 도시 전체가 가라앉은 것일까? 지진이 있었다면 건물들이 뒤틀리고 균열로 가득 차 있을 것이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그처럼 많은 양의 흙이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어떻게 바닥이 흙에 잠기고 반 지하실이 생겼을까? 누가 깊은 지하에 큰 창문을 만들었을까?
이처럼 오래된 건물들은 1900년경 미국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독일의 그런디사이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훨씬 더 오래되었을까?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땅에 묻힌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앞에서 사진으로 비교하면서 설명한 대로 라이프치히 시청은 바닥이 완전히 흙으로 덮혔다. 그리고 미국 황금기 시대의 반지하 건물들도 특이하다. 1층이 일부라도 땅에 묻히면 외관이 훼손되고 습기 등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
채광구를 보면 확실히 진흙으로 뒤덮힌 것이다
그러나 이 건물들에 들어가서 지하실을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채광구를 조사했고 숨이 멎었다. 오늘날 채광구의 깊이는 1m를 넘지 않는다. 창이 크면 계속 더러워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작게 만든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오래된 건물들에서는 채광구가 정말 깊다. 라이프치히의 신청사 근처, 지금은 독일 은행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 그러한 예이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이유를 발견했다. 누가 창틀 위쪽이 지하 2m에 놓이고 깊이는 5m에 이르는 샤프트를 가진 큰 창을 실제로 만들었을까? 왜 이렇게 잔뜩 흙 먼지를 모으고 싶었을까? 현재는 채광구가 나무 좌측의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98년에 시작하여 3년 만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이상하게도 당시로서는 꽤나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더 깊이 파보자. nikolai kirch에서 멀지 않은 곳의 또 다른 흥미로운 사진이 있다. 좁은 뒤뜰에 자리잡은 채광구의 샤프트이다. 1m 깊이에서 시작하는 창에는 커튼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창 밑에는 문으로 보이는 또 다른 구멍이 있다. 누가 왜 지하 2층에 깊이에 문과 창을 만들었을까? 지하수 뜨러 가려고 그랬을까? 문이 지하에 위치한 것도 이상하고 채광구가 이런 깊이까지 지어진 것도 수수께끼다. 그렇게 어둡고 깊은 곳에 누가 살까? 미스터리다.
반지하 건물은 남미에도 있다
진흙 홍수에 관한 좋은 사례가 여기 있다. 남미 도시에서 찍은 이 사진들 중에서 내가 몰랐던 가장 흥미로운 사진이다. 특히 오른쪽에 지표면이 드러난 이 사진. 이제 이러한 진흙 홍수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는 길을 찾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비밀로 유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모스크바에도 있다
불행히도 지금은 삭제된 한 비디오에서 모스크바의 건설 작업 도중 토양이 무너지는 과정이 기록되었다. 대변인은 묻혀 있던 건물의 기초가 4m 깊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18m 깊이였다고 말했다. 맞다. 18m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도 있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다. "나는 솔트 레이크 사원으로 견학을 갔다." "나는 최근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은 정말 놀랍다." 이것은 일반적인 지표면이다. 여기 이 사람들 위로 약 9m 높이의 흙이 제거되었을 것이다.
모스크바 폴리테크닉 박물관 - 벽돌 기둥을 관통하는 i-빔
모스크바 폴리테크닉 박물관을 찍은 이 이 비디오는 가장 큰 회의론자조차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박물관의 재건 과정을 보여주는 이 비디오는 건물 내부와 외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폴리 테크닉 박물관 현대화는 대규모 국가 혁신 프로젝트입니다."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진행되는 현대화 작업입니다." "이 모든 사진들은 폴리테크닉 박물관의 재건에 관한 것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메인 플로어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i-빔이 벽돌 기둥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구조가 만들어졌는 지에 대한 기술적 사항에 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재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문제는 뒤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그것 말고도 다루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지하 세계
이 비디오는 지하실의 바를 보여준다. 틀림없이 이전에는 1층이었다. 한편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호기심은 수 많은 지하 도시로 향한다.
놀랄 준비를 하고 들어 보시라.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대도시에는 대형 터널 시스템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두더지처럼 6~18m 깊이에 굴을 팠을까? 우리는 한 때 지표면이었으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 흙 속으로 가라 앉은 지하실을 다루고 있는 것인가?
시애틀의 지하 공간
이것은 미국 서부 도시인 시애틀의 지하 공간이다. "뒤쪽에 계단이 있습니다." "멋지네요."
잠정 결론 - 지표에 흙이 싸여 건물이 파묻힌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시기는 미궁.
이런 사례가 많지만 임시 결론을 내려보자. 오늘날의 지표면이 이 모든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보다 1.5~6m 더 높아졋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1870년에서 1900년경의 소위 독일 Grundyside와 미국 황금기 시대의 건물들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19세기나 20세기에 세계적인 대재앙이 있었고 그 후에 보수 작업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앞서 논의한 라이프치히의 구 시청의 경우에서 처럼 1600년경에 일어났을까? 아니면 여러 번 발생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건물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고, 우리의 역사 기록은 코미디가 될 것이다.
토지 등기부에 기재된 건설 계획에 따르면 이 건물들은 단지 인벤토리로 지어진 건물일 수 있다. 이 건물의 실제 건축업자와 소유자는 재앙적인 사건으로 사망했고 그래서 그들의 후손들은 소유주가 없는 이 도시를 점유하여 건물을 적절하게 변경 사용했을까? 이것은 우리가 뒤에서 논의할 개념인 재설정된 도시에 관한 것이다.
1840년까지도 황량했던 대도시
많은 사진들이 1840년 경의 대도시가 황량했음을 보여준다. 믿기 힘든 얘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의 기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면 많은 사람들을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만일 1945년 이후 재교육 과정에서 역사 기록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면 어떻게 될까? 증오 받는 독일인들의 과거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문자 그대로 승자가 역사를 썼을까?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불일치에 직면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모토를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즉, 더 크게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게으름과 무관심은 오늘날 어디에나 만연해 있다. 추정컨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황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 가정이 학교에서 주입된 것임에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시대로부터 어떤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정확히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역사는 지루할 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속아서 둔감해진 탓에 스스로 지켜보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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